여기 가을이야 가을이라 말하기 뭣하지만..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라..
꽃 속에서, 그보다 더 곱게 웃던 여인들이 생각납니다.
2년 전 가을, 많이 아플 때 썼던(달라스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뉴스 코리아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오늘 아침, 불현듯, 그대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려봅니다.
목사님, 사모님, 보고 싶네요.
사랑하는 여인들...근사한 가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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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생전 처음 가을을 타는지 아침저녁 찬바람이 돌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더니 무엇이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몸과 맘이 아파왔다.
정도는 다르지만 전에도 가끔씩 아플 때가 있었지만, 흐른 세월이 그렇고 살아온 날들이 그러하니
당연하지 싶어 몇 일 참아내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이젠 그 한계도 다했나보다.
그동안 적잖이 미련을 떨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던 언젠가부터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생각해도
무조건 참는 것으로 버티지 말 것을 다짐했었다.
그렇다고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더 나빠지지 않기’를 목표로 하나씩 필요한 것을 챙긴다는 것이
이젠 선반을 가득 채운 온갖 종류의 약과 보조식품들, 그것들을 볼 때마다 한심스럽고,
때마다 이름도 모르는 약들을 한 웅큼씩 삼키느라 애쓰는 교회 노인들을 타박하던 것이 생각나 민망하다.
흉보며 닮는다더니 어느덧 과속에 추월까지 하며 그들을 닮아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아픔으로 종일 애를 쓰다가 퇴근한 조카딸과 함께 비타민을 사러가는 길,
몸 아프다는 핑계로 마음까지 병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불평 섞인 하소연을 했나보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큰 은혜를 얻었지만 내게 남겨진 후유증이 너무 크고 아프다고,
앞으로 감당할 세월이 겁나고 까마득한데 내 맘 같지 않은 현실과 사람들이 섭섭하다고…
솔직히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냥 우울한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뭐라뭐라 한 것 같은데 조카가 말허리를 잘랐다.
“이모, 많이 아프고 힘든 것은 알지만 그만하길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상황이라면 이모가 큰 병에 들던지 쓰러지는 것이 마땅했어요.
그런데 이모도 그렇고 가족 중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낸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축복인데요.
그 때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아요. 너무 너무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요?”
조용한 그 한 마디가 귓가에서 천둥소리가 되었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멍멍했던 정신에 번쩍 불꽃이 튀더니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작년 이맘 때 한국에서 겪었던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간 한국이지만 빡빡한 집회일정으로 가을정취를 만끽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은 눌러 참아야 했다.
그래도 그렇게도 많이 변했다는 서울구경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고,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이라도 해야
힘든 일정을 소화할 에너지를 얻을 것 같았다.
하여 도착한 다음 날 시차고 뭐고 상관없이 무조건 한양 나들이에 나섰다.
말로만 듣던 서울광장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서점에 들러 그야말로 태산을 이룬 책들을 보며 한 달을 안 먹어도
살 것 같은 충만감을 느꼈다. 그런데 책과 더불어 사람까지 홍수를 이루니 멀미가 났다.
급하게 책 몇 권을 골라 사물함에 보관하고 가뿐하게 밖으로 나왔다.
점심을 먹은 후 변해버린 거리들을 둘러보며 감동하고, 청계천에 가서 폼 잡고 기분을 내다보니
어느 덧 저녁이 되었다.
보관한 책을 찾아 집에 가려고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아, 근데 저게 뭐지? 아까는 보지 못했던 세련된 현수막 하나가 빌딩 정면에 펄럭이고 있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나중에야 장석주 님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의 한 소절임을 알았지만 어쨌든,
가까이 다가가 그 글귀를 읽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누군가 나를 행해
“그래, 난, 널 알아. 정말 너를 이해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켜켜이 쌓였던 온갖 아픔과 설움이 녹아내리듯 지극히 마음이 평안해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그래, 이젠 모든 것이 괜찮아.”
대추가 익어가는 가을이 다시 왔는데, 올해도 역시 그것이 저절로 붉어졌을 리 없지 않은가.
탐스럽고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안에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몇 개씩은 품고 있을 것인데,
그래서 그것을 더욱 아름답다 여기며 만족하고 감사하면 될 것인데…
내려놓지 못해, 겸손하지 못해 스쳐가는 바람조차 무겁다고 허덕대던 내 모습이 실로 부끄럽다 여겨지는 이 때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이 천둥소리로 들려지다니 큰 복이다.
인생이 저절로 아름다울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앞으로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쯤 더 찾아온다 해도 대수일까.
그것으로 인해 결국은 우리의 남은 날들이 더 근사하게 영글어 갈 것인데......
그러므로, 이젠 다 괜찮다. (2010. 10. Newskorea 연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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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밀말의 밤 "가을 미소"에 초대합니다!!!!!!!!!!!!!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2012-2 세이레 특별새벽기도 말씀(매일 update)